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권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도 한다.이이는 물론 양친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그들이 과연 다산이 기롱(譏弄)한 잘못된 선비들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더구나 사시·행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전문적 지식까지 넉넉하게 가진 분도 많을 것이다.[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 (‘속유론) 율곡과 다산의 참선비론은 일치한다.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 율곡의 참선비론을 보자. 벼슬에서 물러나면 만세에 교육할 가르침을 전하여 학자들이 큰 꿈을 깨치게 하는 사람이다.일본은 새로운 개혁을 위한 모델이었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숨어있는 참선비를 찾아내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은 더 큰 불행이었다. 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던 애국심으로 보거나 두 분은 많이 닮은 점이 많다.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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